나는 여전히 혼자가 좋지만, 이 사람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ENTP, 예비신랑이 된 그는 ISFJ다.
감정에 확신을 주는 타입도, 애정 표현이 막 드라마틱한 스타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조용한 방식이 꽤 든든하다.
(속이 터지다 못해 짖물렀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다.)
내가 넘어지면 말없이 손을 내밀어주고,
내가 뭐 하나 잘하면 자기 일처럼 신나한다.
아니, 가끔은 나보다 더 신나 보인다.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우리는 1년 넘게 연애했고,
결혼 준비라는, 엄청나게 큰 전쟁도 함께 치르는 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직까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물론 "아니 이걸 이렇게 생각 한다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우린 진짜 다른 종족인가?" 싶었던 날도 있었지만
그의 넉넉한 눈빛을 마주할 때면 "아, 내가 지금 많이 배려받고 있구나" 싶은 순간들이 쌓였다.
그는 내 자존심을 슬쩍 건드리거나
내 방식에 참견하지 않으면서도
늘 옆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감싸주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는 공간은,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괜히 조용히 웃음 나는 그런 느낌이다.
혼자가 더 편하다고 믿었던 내가,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느낀 건
오랜 시간이 걸린 변화는 아니었다.
어느 날, 둘만의 술자리에서
그가 갑자기 물었다.
“자기는 딩크야?”
순간 조금 긴장했다.
나의 많은 면들이 상대에게 이렇게 비춰질 때가 많은지, 종종 받던 오해였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딩크까진 아닌데,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는 생각 안 해.
잘 키울 자신도 없고…
이 지구상에 내가 사라지는 순간, 내 유전자가 남아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을 갈아넣을 만큼의 각오는 안 돼.”
사실 이런 얘기를 하면
돌아오는 말은 늘 비슷했다.
‘이기적이다(알고있다. 크게 반박할 생각도없고)’, ‘낳고 나면 생각 바뀐다’,
심지어 ‘결혼해서 애 안 낳으면 지금 연애가 의미가 있냐’ 같은 말까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방어 태세였다.
진심이긴 하지만, 그런 반응들을 너무 많이 겪다 보니
나중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괜히 더 세게 말해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 사람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괜찮아! 애는 우리 엄마가 잘 키워!”
…어라?
예상 못 한 대답에 잠깐 멈칫했다.
근데 그 말이, 이상하게 웃기면서도
너무 다정하게 들렸다.
그 순간, 마음속 어딘가가 스르륵 열렸다.
아, 이 사람은 나를 바꾸려 하지 않는구나.
내 생각을 틀렸다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사람이구나.
그 확신이 들었다.
(그의 어머님이 이 말을 들으시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진 아직도 미스터리지만... 그건 조용히 접어두기로 한다.)
그래서 나도 결심했다.
나도 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보기로.
물론 잘 안 될 때도 많다. 종종…
그렇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나를 인정해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은
아마 다시 없을 것 같다.
🧡 마무리하며
나는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좋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아침,
내가 내린 커피 향으로 천천히 깨어나는 그 고요함.
내가 내 방식으로 접어둔 이불과 수건의 단정함,
내 공간 속, 물건들의 배치.
그런데 이제는,
그 평화로운 장면 안에 함께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 생겼다.
내 루틴을 뒤흔들지 않고,
그 안으로 스며드는 사람.
나는 한때 진심으로 믿었었다.
‘나는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지금은,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아니, 이 사람이라서—
괜찮다고, 확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