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같은 사람은 혼자 살아야 한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
나는 한때, 아니 꽤 오랫동안 정말로 믿었다.
‘나는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게 내 성향이고, 체질이고,
오히려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도 나같은 사람은 혼자가 더 나을 거라고까지 생각했었다.
진심이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보다
내 리듬대로,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나를 바꾸지 않는 테두리안에서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아도되는 선 안쪽에서
훨씬 나를 지켜주는 방식이라고 느꼈다.
연애는 언제나 내 삶의 활력소였지만,
그게 곧 ‘같이 사는 삶’까지 연결되진 않았다.
그 믿음이 아주 확고해진 시기가 있었다.
어느 날, 본가를 떠나
내 원룸 자취방으로 피신하듯 내려온 남동생.
부모님의 취업 압박을 피해 잠시 머무르겠다고 했던 그는 (엄마 아빠의 아들을 '그'라고 지칭하기엔 어색하니 '그놈'이라고 하겠다)
몇 주? 아니, 길어야 한 달쯤이라던 예상와는 달리
거의 1년을 함께 살게 되었다.
수백 번을 잔소리했지만,
그놈은 여전히 양말을 뒤집어 벗었고,
나는 마침내 폭발했다.
그 자식의 양말들을 몽땅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자, 너 이래도 안 바뀌나 보자’ 하는 눈빛으로 지켜봤다.
놈은 아주 쿨하게
새 양말을 사 왔고,
그리고 또 아무 데나 휙휙 벗어두었다.
(이쯤 되면 인간은 진화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날 나는 진심으로 깨달았다.
“아… 나는 그냥, 평생 혼자 살아야겠구나.”
그 시절 나는 갓 대학을 졸업하여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싱그러운 사회 초년생이었다.
위의 확신은 아직 철학 같은 건 아니었고,
10년을 넘게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에게 은근슬쩍 던지는
일종의 으름장이자 경고 같은 거였다.
“너도 이럴거면, 우리 사전에 결혼은 없어!”
그런 눈빛을 섞어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그땐 그저
‘나는 혹시 이런걸 견디지 못하는 종류의 사람일지도 몰라’ 정도의
가벼운 의심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그 의심은 점점 뿌리를 내렸고,
결국 확신으로 굳어졌다.
가장 길게 사랑했던 사람과의 10여년의 장기연애는
뜻밖의 단 한 달짜리 동거로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그 에피소드는… 생략하겠다.
긴 세월에 대한 예의로 남겨두는걸로..
그 길고 긴 장기연애가 끝난 뒤엔
아주 짧고 빠른 만남들을 반복했다.
그 중엔 유독 내 마음이 시소처럼 오르내리던 연애가 하나 있었다.
그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을 했고
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의 생김새 만큼이나 강렬했던 그의 테스토스테론은
그의 다리털만 봐도 알 수 있었는데
그리고 그 앞뒤로 수북하니 빽빽한 다리털은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아니, 사실은 훨씬 더 은근하고 고집스럽게
내 자취방 곳곳에 존재감을 남겼다.
소파 위에도,
이불 안에도,
가끔은 내 화장대 앞 러그 위에도.
그 사람의 흔적이 나보다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흔적을 돌돌이로 쓸어 담으며,
나는 또 생각했다.
함께 산다는 게 이렇게 현실적이고, (함께 살지도 않았으면서..)
이렇게 적나라한 일이었나.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와 함께 사는 미래를 상상하면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보다,
볼멘 얼굴로 돌돌이를 든채 예민스럽게 청소하는 내 모습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그때 알았다.
아니, 또 한 번 확신했다.
사랑은 했지만
(사랑이 아니었겠지라는 의심은… 머리가 아프니 접어두자)
함께 산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걸.
그래서 나는 조용히 결론을 내렸다.
“나는 혼자가 편한 사람이야.”
그 결론은 한동안
나를 지켜주는 생각이었다.
혼자라는 단어가 외롭지 않았고, (거짓말)
오히려 당당하고 단정한 삶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예쁘게 접힌 이불처럼,
아침 햇살 아래 반짝이던 식탁처럼.
그건 누군가가 침범할지 않는 성역이자 내 삶의 평온한 풍경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다.
나 자신도 때때로 조금 놀랍다.
나는 지금 서른여덟 살,
조금 늦은 나이에 예비 신부가 되었다.